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제아 토마스(1961)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및 대학 경력 == 토마스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대가족의 막내로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고 한다. 굉장히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형들은 마약을 하기도 하고 나쁜 생활을 하였으며 실제 한 형은 어렸을때 폭력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실제로 한 대학팀의 코치가 토마스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토마스가 살던 동네로 간 적이 있었는데 거리가 더럽고 무시무시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본인들은 나쁜 길을 가고 있음에도 막내는 잘 나가게 하기위해 막내인 아이제아가 나쁜 짓을 하면 호되게 혼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백인이 많은 학교에 다니던 토마스는 처음에는 예상대로 백인학생들의 텃세를 받았지만, 결국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농구팀은 토마스를 중심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토마스는 졸업하게 되자 수많은 대학의 리쿠르트 대상이 되었다. 자동차, 현금 등을 제시하던 수많은 대학을 제쳐둔 후에 [[인디애나 대학교]]의 [[열혈]] 감독인 밥 나이트(1940~2023)[* 오하이오 주 오어빌 출신. 오어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로 진학하여 프레드 테일러(1920~2002) 감독의 지도 하에 선배 제리 루카스, 동기 [[존 하블리첵]]과 함께 1960년 NCAA 전국대회 우승에 공헌했고, 학업에선 역사 및 행정학을 전공했다. 1962년 졸업 후 쿠야호가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1963년 군 입대 후 미국육군사관학교 코치로 선임되었고, 1965년 감독으로 승격하여 임기 6년 동안 마이크 슈셉스키 등을 기르는 한편, NIT에 4번 진출시켜 1970년 대회에서 3위를 땄다. 1971년 인디애나 대학교로 옮겨 임기 29년 동안 NCAA 전국대회 우승 3회(1976, 1981, 1987), NCIT 우승 1회(1974) 등의 무수한 업적을 남기며 토마스 외에 켄트 벤슨, 짐 크루즈(전 에반스빌 대학교 감독), 마이크 우드슨(현 인디애나 대학교 감독), 우베 블랍, 랜디 휘트먼(전 워싱턴 위저즈 감독), 스티브 알포드, 제이 에드워즈, 그렉 그레이엄, 칼버트 체이니, 앨런 헨더슨 등 유수한 제자들을 남겼다. 그러나 다혈질적 성격 탓에 1985년 퍼듀전 때 의자 내던지기 등이 구설수에 올랐고, 2000년 3월에 CNN을 통해 제자 닐 리드의 목을 조르는 모습이 담긴 3년 전 훈련 영상이 공개되면서 한달 후 마일스 브랜드 총장으로부터 '불관용 조치'를 받았고, 9월에는 존칭 없이 인사한 한 신입생의 팔을 세게 잡은 것이 화근이 되어 감독직에서 [[https://www.donga.com/news/List/article/all/20110302/35233282/1|해고당했다.]] 2001년 텍사스 공과대학교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하여 임기 7년 동안 NCAA 전국대회 진출 4회, NIT 진출 1회를 각각 기록했고, 특히 2005년 전국대회 때 16강까지 갔다. 2008년 2월 4일 은퇴 시까지 통산 전적 902승 371패를 기록했으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마이클 조던, 스티브 알포드 등을 포진시켜 금메달을 따게 했으며 1992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2006년 미국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고, 지도자 은퇴 후 2015년까지 ESPN 대학농구 해설위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아들 팻 나이트도 아버지처럼 지도자의 길을 걸어 텍사스 공대와 라마대에서 감독까지 맡았다가 2014년부터 인디애나 페이서스 스카우터로 재직 중이다. 또한 밥 나이트의 코칭 트리에 속한 인물로는 전술한 코치 K와 짐 크루즈 외에 돈 디보(전 테네시 대학교 녹스빌 캠퍼스 감독), 밥 웰티치(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감독), 데이브 블리스(전 뉴멕시코 대학교 감독), 밥 도네왈드(전 웨스턴 미시건 대학교 감독), 로이스 월트먼(전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감독), 머레이 바토우(전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교 감독), 크리스 비어드(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감독), 마이크 데이비스(현 디트로이트 머시 대학교 감독) 등이 있다.]가 찾아왔다. 밥 나이트는 어머니에게 3가지 제안을 했는데, 1. 나는 그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도록 하겠다. 2. 나는 그에게 농구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 3. 그러면 그는 신사로 거듭날 것이다. 다른 대학교에 비하면 부족하고 추상적이어 보이는 제안이었고 거기다가 인디애나 대학교는 [[KKK]]의 본거지로 악명높은 인디애나주에 있었기때문에 토마스의 식구들은 불안감을 가졌고 어머니는 나이트코치에게 만약 당신의 학교학생들이 토마스를 해코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이트에게 하는데 나이트의 대답은 '''"우리 팀이 이긴다면 그들이 보호해줄 것입니다."'''였다. 형들은 그의 대답에 처음에는 농담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진심이란것을 알게된 후 불같은 화를 내면서 밥 나이트와 싸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밥 나이트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언론에 우리 아들은 인디애나 대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고 선포하게 되었고 토마스와 그의 형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어머니의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밥 나이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조직적인 농구로 유명했고 코트 위에서나 밖에서나 다혈질이었다. 그런 나이트도 토마스를 보자마자 한 말이 딱 이랬단다. '''"토마스, 넌 네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해라."''' 감독의 지원 아래 토마스는 2학년 때 [[제임스 워디]]와 [[샘 퍼킨스]]가 버티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타 힐스|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결승전에서 이겨서 학교를 [[NCAA]]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고, 자기 자신도 MO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NCAA우승을 해도 그의 가정은 여전히 가난을 벗어날수 없었으며 그것은 토마스에게 [[얼리 드래프트]]를 결정하는 동기가 되었고 밥 나이트는 당연하게도 거세게 반대를 했지만 결국 토마스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토마스는 1981년에 바로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